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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바르셀로나 - 역사 기행

by 심려자 2024. 2. 18.


Barcelona 는 스페인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이고 유럽 전체에서도 여섯번째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다 (1.런던, 2.파리, 3.이스탄불, 4.로마, 5.암스텔담). 바르셀로나 인기의 주요인은 가우디의 성당 (Sagrada Familia) 과 그의 건축물들이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처음 방문하면서 제일 먼저 가본 곳이 가우디 성당이었다. 사실 큰 기대없이 의무감 같은 것으로 방문 했는데 가우디 성당 내부의 기둥과 천장 그리고 그것들을 비추고 있는 자연 조명 (스테인드 글래스를 통해 들어온 햇빛) 은 인상적이었고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주변에 건물들이 많아서 전경 사진을 찍는 것이 쉽지 않다.

 

기둥 천장 창문

가우디 성당의 이름이 성스러운 가족 성당 (Sagrada Familia) 인 것은 19세기 말 성당 건축을 위해 돈을 기부한 사람이 예수님과 그 가족 (마리아와 조셉) 을 모시는 교파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가우디 성당의 입장료 (25유로)는 면죄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나는 속죄했다!) 이 성당의 2023년 입장료 수입은 약 1,200 억원이다. 사실 바르셀로나의 주교가 있는 공식 성당은 따로 있는데 여기 입장료는 9 유로라고 한다. 주교가 있는 성당만 Cathedral 이라 부를 수 있는데 가우디 성당은 Cathedral 이 아니라고 한다.

이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가우디 성당에 관련해 가장 특이한 점은 성당 외벽에 악마가 노동자에게 (테러에 쓰라고) 폭탄을 주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가우디 성당의 건축 동기 중 하나는 19세기 말 혁명 세력과 무정부주의자들을 꾸짖는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의 가톨릭 교회는 보수-우파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20세기 중반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국 정부를 무너뜨리고 독재 정권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도 가톨릭 교회의 지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판의 미로’ 라는 스페인 영화의 소재도 이와 관련).  프랑코는 히틀러에게 부탁해 자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폭격해서 그 지역 사람들을 몰살시켰다. 이를 고발한 그림이 피카소의 게르니카이다. 피카소는 후에 한국 전쟁에서 같은 비극을 인지하고 같은 주제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 을 그렸다. (이 그림은 군사정권 당시 한국서 금지되었었다.)

스페인 근현대사에서 좌우 갈등과 내전의 상처는 한국과 비교할만 하다 (물론 한국전쟁 당시 사망자가 훨씬 더 많았지만). 스페인 내전 (1936–39) 에서 오십만명이 사망했고 그 이후 정권을 잡은 프랑코 정권 하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처형당한 사람들도 수십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아직도 당시 처형된 사람들의 집단 매장지가 발견된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군부세력에 저항하는 세력의 수도 역할도 했고 현재 스페인 수도인 마드리드가 프랑코 세력의 수도 역할을 했던 것이 현재 스페인 양대 축구팀의 라이벌 관계와도 연결되어 있다.

스페인 내전 때 프랑코/파시즘에 대항하여 의용군으로 참전한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약 35,000 명) 그 중에는 소설 ‘동물농장’ 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도 있었다. (헤밍웨이도 프랑코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종군기자로 참전했다.) 바르셀로나에는 조지 오웰 광장도 있다. 바르셀로나에 거점을 둔 반프랑코 (좌파) 세력은 구 소련의 지원과 통제를 받는 공산주의 세력과 스탈린의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사회주의 세력으로 나뉘어졌다. (오웰은 후자였다.) 결국 이 두세력 간의 시가전이 벌어지면서 내전 속의 내전이 벌어지고 결국 바르셀로나는 프랑코 군에 함락 당한다.

카탈루니아 광장의 초대 대통령 기념비

프랑코가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 정권을 수립한 역사적 배경은 1931년 스페인 왕이 폐위되면서 공화국 체체가 된후 1936 년에 스페인 내란이 발생하고 1939년에 프랑코 군이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에 (1932년) 바르셀로나를 포함한 카탈루니아 지역은 자치정부를 수립하게 되는데 그 초대 대통령이 Francesc Macià 이다. 바르셀로나의 중심에 카탈루니아 광장 (Plaça de Catalunya) 이 있는데 그곳에 가장 눈에 띄는 조형물이 초대 대통령의 기념비이다. 안타깝게도 머시아 대통령은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맹장염으로 1년만에 사망하고 그의 장례식에는 애도의 인파가 몰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후임 대통령은 프랑코에 의해 처형당했으니 본인 입장에선 차라리 잘 된 것일수도 있겠다. 바르셀로나는 2017년에도 독립을 시도했다.

사족이지만 관광객의 입장에서 카탈루니아 광장의 모습은 좀 어수선하고 실망스럽다. 관광객 수입도 많을 것이고 스페인에서 두번째로 부자 도시라는데 시내 중심 광장으로서 초라해 보인다. 사족을 하나 더 추가 하자면 유럽 언어들은 대체로 같은 알파벳을 쓰는데 왜 남의 나라 지명을 영어에선 지멋데로 바꾸는 걸까? (Catalunya -> Catalonia; Firenze -> Flo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