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인들은 맨해튼을 원주민들로부터 24 불 주고 샀다는데 그로부터 50년 쯤 후에 1664 년 영국인들은 1 불도 안주고 빼앗았다. (맨해튼을 24 불 주고 샀다는 이야기엔 여러가지 이견이 있긴 하다. 판게 아니라 빌려준 것이라든지 현재 가격으로 환산하면 24불보다 훨씬 많은 액수라든지 하는 애기들이다.) 그렇다고 네덜란드 인들과 영국인들이 피를 흘리며 싸운 것도 아니고 뉴욕의 네덜란드 인들은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를 잃지도 않았다. 오히려 네덜란드 후손 뉴요커 들은 초기 정착자의 이점과 기득권으로 대접을 받고 살았다.
맨해튼에서 역사적으로 제일 흥미로운 건물이 Federal Hall 일 것이다. 뉴욕 증권 거래소 (New York Stock Exchange) 바로 옆에 위치한 이 건물에 가 봤더니 커다란 현수막에 첫번째 수도, 첫번째 대통령, 첫번째 의회라고 쓰여 있다. 이곳이 미국의 첫번째 국회 의사당이었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 취임식을 가졌던 곳이라는 뜻이다. 현재 서 있는 건물은 사실 19세기 중반에 재건축된 건물이니 실제로 초대 대통령이 취임식을 가졌던 곳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신전처럼 지은 이유는 그리스 시대의 민주주의와 로마시대의 공화정을 지향하는 의미라고 한다. 백악관이나 링컨, 제퍼슨 기념관 등 수도 워싱턴 디씨의 건물들도 로마시대 양식으로 지은 것을 보면 미국은 로마 제국이 되고 싶어한 듯 하다. 하긴 따지고 보면 모든 서양국가에게 망한 지 1500년이나 되는 로마 제국은 닮고 싶은 나라였는지 모른다.
Federal Hall 앞 길에 나무 기둥이 박혔던 흔적들이 줄지어 남아있다. Wall Street 의 이름이 유래한 나무로 만든 방어벽 (palisades) 의 흔적인 것이다. Federal Hall 은 그 벽이 있었던 자리의 바깥쪽 (북쪽) 에 있고 뉴욕 증권거래소는 안쪽 (남쪽) 에 있다.
비둘기 바로 아래 사각형이 월스트리트 방어벽의 기둥이 박혀있던 흔적이다. 그 흔적이 멀리 보이는 Trinity Church 쪽으로 계속 이어진다. Trinity Church 는 영국 성공회 교단 교회로서 독립 전쟁 전에는 상류 사회 사람들 (친영파) 이 주로 다니던 교회였다고 한다.
월스트릿에서 북쪽으로 20분 가량 걸어가면 Canal Street 를 중심으로 차이나 타운이 나온다. Canal street 은 도시의 폐수가 흐르던 하수천이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거리이다. 당시에 악취 등의 문제로 저소득층이 몰려 살던 지역이고 차별 받던 중국 이민자들이 19 세기 말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중국 이민자들은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노동력 충원을 위해 중국 남자들의 이민을 받아들였는데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아서 여성 비율이 100 명당 1명도 안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시민권을 가진 미국 여성이 중국 남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의 미국 시민권을 박탈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끔 아이리쉬 여자들과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아일랜드 이민자들도 당시엔 흑인들과 동급으로 차별을 받았다. 물론 지금 차이나 타운은 관광 명소가 되었고 가난한 이민자들이 자리 잡기엔 너무 비싸졌다.
차이나 타운 바로 위 (북쪽) 엔 Little Italy 가 있다. 19세기엔 이탤리언들도 차별받는 이민자 그룹이었고 빈민가였던 이 동네에 자기들끼리 몰려 살았다. 남부 이태리 출신 사람들은 백인의 범주에 넣어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때 마피아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대부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Little Italy 라는 커다란 표지판을 빼고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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