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1842-1910)
분트보다는 10 년 뒤에 태어났고 프로이트보다는 12년 전에 태어난 윌리암 제임스도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들 중 한사람으로 언급되고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제임스는 분트와 여러면에서 대비된다. 분트는 에너지가 많고 엄청나게 부지런한 사람이었던 것에 비해 제임스는 병치례도 많이 하고 가끔씩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불안 장애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또 분트는 당시 미국에 비해 문화적으로나 학문적으로 훨씬 앞서 있던 독일에서 당시에 유명한 학자들로 부터 생리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분트는 5년 넘게 에너지 보존의 법칙으로 유명한 헬름홀츠 (Hermann von Helmholtz) 의 조교로 일하기도 했다. 반면에 제임스는 주로 독학으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제임스는 미국 대학에서 최초로 심리학 과목을 가르쳤고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은 미국 최초의 심리학 박사가 되기도 했지만 본인은 자기가 심리학을 강의하면서 듣고 배웠다고 농담을 했을 정도로 거의 독학으로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뉴욕 맨해튼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장소는 후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두 번 세워질 장소에서 세 블록 떨어진 곳이다.) 제임스의 아버지가 별로 경제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이유는 할아버지가 덕분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이름도 윌리엄 제임스이다) 는 자수성가한 부자로 유명했다. 담배 가게 점원으로 시작해서 한때 지금 뉴욕주 시라큐스 주변 지역 땅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었을 정도로 돈을 많이 모았다고 한다. 손자 윌리엄 제임스는 아버지와는 달리 수입이 있는 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의대에 진학했다고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동생인 헨리 제임스도 소설가로 유명했다. 당시 미국 작가 중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 후에 영국으로 귀화했기 때문에 꼭 미국 작가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형 제임스의 연구 업적이 21세기 심리학 개론 교과서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어 지듯이 동생 헨리의 작품들도 20세기 말까지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윌리엄 제임스의 여동생도 작가로서 당시에 이름 알렸다고 하니 재주가 아주 많은 집안이었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낸 윌리엄 제임스는 남북 전쟁이 시작될 무렵 하바드 대학교에 진학한다. 당시에 하바드 대학교는 교수 23 명에 총 학생 수 500 명 쯤 되는 작은 학교였고 입학 시험이 없고 학기 중에도 아예 필기 시험이 없던 시절이었다. 윌리엄 제임스의 아버지는 하버드 대학에 진학하려는 아들에게 쓸 데 없이 대학가서 시간 낭비 하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대학엘 안 보내주면 입대해서 남부군과 싸우겠다고 했서 그것보다는 대학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입학을 허용했다. 대학을 다니다가 의대로 전과한다. 하바드 의대도 입학 시험도 중간 고사도 기말 시험도 없던 시절이었고 고등학교 졸업장도 필요 없고 등록금만 내면 받아 주었고 빠르면 1 년 만에도 의사 학위 (M.D.) 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제임스가 의대에 입학한 해가 1864년 이다). 의대생 중 반 이상이 글을 잘 쓸 줄 몰라서 유일한 시험이었던 졸업시험은 구두 시험이었다. 당시 하바드 의대가 이런 식이었던 것은 돈 때문이었고 (과정을 까다롭게 만들면 학생들이 안 오니까) 제임스가 의대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도 돈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재벌 급 부자였지만 손자 대 와선 평생 유산으로 넉넉하게 살 만큼은 안되었던 모양이다.
제임스는 의학 공부가 적성에 잘 맞지 않았던지 휴학을 하고 아마존 탐사에 따라 나선다. 하바드 대학의 생물학 교수 중 한 사람이 다윈의 진화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아마존의 동 식물들을 탐사하러 가는데 자원 봉사 조수로 따라간 것이다. 탐사 결과가 다윈의 진화론이 틀렸다고 증명하지는 물론 못했고 애초에 제임스는 오히려 진화론을 믿는 편이었다. 돌아와서 복학 했다 다시 휴학하고 유럽으로 간다. 우울증과 허리 통증 등 문제로 휴양 차 간 것이다. 유럽에서 심리학과 생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 먹고 보스턴으로 돌아와 입학 한 지 5년만에 의사 학위를 받는다. 졸업시험 (구두) 에서 윌리엄 제임스가 받은 질문 중 하나는 아버지 요새 어떻게 지내시냐 였다고 한다. 윌리엄 제임스의 집안은 당대 미국의 저명인사나 문인들과 교류가 많았다. 당시의 미국은 고등교육이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기였고 미국 아이비 리그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 수가 다 합쳐도 열댓 명 이었고 심각하게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려던 학생들은 독일을 포함한 유럽으로 가던 시절이었다. 당시 독일엔 천명 정도의 대학원 생이 있었고 하버드 대학은 독일의 대학을 모델로 삼아 학교를 발전 시키려 애쓰던 시절이었다. 의대를 졸업한 뒤 4년 간 진로를 고민하다가 하바드에서 생리학을 가르치는 시간 강사 자리를 얻게 되고 후에 심리학과와 철학과의 정교수까지 승진하며 은퇴할 때까지 하바드 대학에서 일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대로 분트에 비해 심리학이나 생리학에 대하여 체계적인 교육은 훨씬 덜 받았지만 윌리엄 제임스의 저술과 연구 성과들은 오히려 분트의 업적보다 쉽게 현대 심리학 개론 교과서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사람의 기억을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으로 나누어 보는 이론도 제임스가 시작한 것이고 사람이 감정을 의식적으로 느끼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통찰도 그의 이론이다. 그는 또 종교 심리학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실용주의자인 제임스는 종교 교리가 맞냐 틀리냐 이런 문제 보다는 종교적 경험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연구했다 (그는 대체로 종교의 영향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제임스는 심리학 분야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철학자로서도 유명하다. 그는 심리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철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다. 당시 신생 학문인 심리학보다는 전통이 있는 학문 분야인 철학이 더 사회적으로 인정 받았을 것이고 제임스는 소소한 실험을 하는 것 보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이론에 더 관심이 있어 했다고 한다. 그는 실용주의 철학의 창시자 중 하나로 여겨진다. 유명한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 헤드는 윌리엄 제임스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라이프니츠 와 비교되는 천재라고 부를 정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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