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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학 기행 - 셰익스피어 Shakespeare 의 고향

by 심려자 2021. 2. 13.

영문학 기행 - 셰익스피어 Shakespeare 의 고향
영문학에서 가장 유명한 (위대한?) 작가가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윌리암 셰익스피어라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어보인다. The Atlantic 이라는 미국의 문학 잡지는 살아있는 125 명의 영국과 미국의 저명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이 작가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은 작품들 중에 세익스피어의 작품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설문조사에서 작품 선호도에 가중치를 준 경우엔 톨스토이가 1위, 셰익스피어가 2위, 제임스 조이스가 3등, 도스또엡스키는 5등이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묻힌 곳은 런던 북쪽의 Stratford-upon-Avon 이라는 마을이다. 뉴욕서 런던까지 7 시간 비행기 타고 가서 런던에서 차를 빌려 북서쪽 방향으로 달렸다. Avon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 이름을 그리 길게 만들었다. 런던에서 두시간 거리인데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말타고 4일이 걸렸다고 한다) 딱 중간 쯤에 옥스포드도 있다.

Stratford-upon-Avon 의 거리



스트랫포드는 작고 예쁜 마을이다. 인구가 13만명 정도라는데 관광객이 일년에 2백5십만명이 온다니 셰익스피어로 먹고 사는 마을이다. 호텔 (크라운 플라자, 추천할만함) 방에 여행가방을 들여 놓자마자 남은 저녁 해를 받으며 세익스피어 생가로 걸어갔다. 셰익스피어 집은 튜더시대 (1485 - 1603) 에 지어졌으니 튜더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튜더 양식은 외우기 쉽게 벽에 티긋자가 쓰여 있다. 이런 특징은 주로 평민들 집에서 보인다고 한다. 셰익스피어가 영국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은 것은 18세기부터이고 그의 생가는 19 세기 중반에 복원되었다. 복원되기 전에 미국 사업가가 분해하여 미국으로 옮기려 하기도 했단다.

그의 생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

 

셰익스피어가 유언장에 아내에게 물려준다고 쓴 침대?



동네 골목



스트랫포드에는 셰익스피어 생가 뿐 아니라 그의 딸과 사위가 살던 집, 셰익스피어가 나중에 돈 벌어서 산 새 집, 조금 떨어진 곳에 셰익스피어가 18살때와 결혼한 앤 해서웨이 (요새 잘 나가는 여배우 이름과 같다) 의 생가까지 관광지로 만들어 놓았다. 앤은 8살 연상이었고 결혼 당시 임신 3개월 째 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부인 보다 몇 년 일찍 죽었는데 유언장에 나의 아내에게 내가 가진 침대 중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물려준다 라고 썼다고 한다.

셰익스피어 부인의 생가


이 동네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점은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자가 이 동네서 나고 묻혔던 셰익스피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한 저명한 사람들 중엔 Ralph Waldo Emerson, Walt Whitman, Mark Twain, Henry James, Sigmund Freud, Helen Keller, Charlie Chaplin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는 돈 잘버는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가죽 장갑을 만들어 파는 상인었다고) 런던으로 가서 배우, 극작가, 극단의 투자자로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 돈을 많이 벌어서 고향에 돌아가 사채업도 하고 부동산 투자도 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보면 작가는 이탈리아 (로미오와 쥴리엣) 나 덴마크 (햄릿) 사정에 대하여 잘 알고있고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처럼 보이고 (어휘력), 외국어도 잘 알고 악기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고 당시 왕족들의 생활이나 궁정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인듯 보인다. 그런데 이 동네 셰익스피어가 외국 여행을 했다는 기록도 없고 초등학교 정도의 교육 밖에 받지 않았던 듯 하고 그의 자식들은 문맹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의 딸들이 공식 문서에 한 사인을 보면 글을 배우지 않은 사람인 듯 하다고. 작품은 페미니스트가 쓴 것 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많은데 딸들을 교육 시키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는 것이다. 또 유언장도 영국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 쓴 글같지 않다는 사람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침대를 부인에게 물려 준다는 내용은 있어도 책이나 원고 등을 누구에게 물려주겠다는 얘기도 없다. 그의 죽음이나 장례식에 대한 별다른 추모의 기록이나 역사적 기록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자신의 작품인 척 발표한다고 비난하는 듯한 동시대인의 글도 있다고.

그래서 실제 원작자는 프란시스 베이컨 이라는 설, 에드워드 드비어 옥스퍼드 백작 설, 크리스토퍼 말로우 설 등등이 있다. 최근에는 셰익스피어가 여자였을 것이라는 설도 꽤 그럴듯 하게 제시된 바 있다. 영국 최초의 여성 시인이고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살았던 Emilia Bassano (Emilia Lanier) 가 그 후보이다.

에밀리아 바시노는 베니스에서 이민 온 궁정 음악가의 딸로서 아버지가 사망한 후 백작부인의 양녀로 들어가서 교육을 받았고 궁정에 들어가 여왕의 귀염도 받았으며
그 백작 부인의 형제가 덴마크의 대사로 부임해 갔는데 그곳에서 참석한 만찬에 햄릿에 나온 인물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에밀리아 바사노는 후에 엘리자베스 여왕의 조카의 첩 (mistress) 이 되는데 아이를 밴 후에 버려지고 궁정 음악가에게 억지로 시집 보내져 구박을 받으며 살았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 중 여권운동가적인 요소가 많고 여성이 썼을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또 당시엔 여자가 연극의 대본을 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도 그녀가 숨은 원작자였을 것이라는 추론을 도와준다. 또 셰익스피어 작품에 Emilia 나 bassano 라는 이름과 에밀리아의 남편과 가족의 이름들이 많이 나온단다.

그가 묻힌 곳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실제 저자였다는 주장과 그를 뒷받침 하는 정황적 증거도 꽤 있는 듯 하다. 셰익스피어 논쟁은 현재까지도 뜨겁게 때론 감정적으로 진행 중이다. 어차피 양쪽 다 결정적 증거가 없으니 논쟁이 없어질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설은 공동 저자설이다. 셰익스피어가 다른 사람들 협력하여 함께 썼다는 설이다. 일종의 타협인 셈인데 사실 당시에 희곡은 공동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셰익스피어가 쓰지 않았다고 그 작품들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Stratford-upon-Avon 의 관광적 가치는 떨어지겠지만.

셰익스피어의 동상 (뒤) 과 해골을 들고 고민하는 햄릿의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