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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2 대 대통령 존 아담스

by 심려자 2009. 4. 10.




미국 2 대 대통령 존 아담스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물론 조지 워싱턴이다.  이 사람은 키가 아주 크고 (6 피트 3 인치 한 190cm  정도) 풍채가 좋고 체면을 아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야심이 있어도 겉으로는 늘 마지못해 다른 사람들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서 관직을 맡는듯한 모양을 취했다.  자신의 역사적 평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래서 죽을 때 유언을 통해 자기가 소유한 노예들을 모두 해방시키도록 했다.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의 건국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이념을 내세우며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지만 그러면서도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스스로도 수백명씩의 노예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워싱턴은 정규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책 읽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또 그렇게 뛰어난 야전 지휘관도 아니어서 승리한 전투와 패배한 전투가 반반 정도이고 자기 자신의 전략과 지휘로 대승을 거둔 전투도 없다.  그러나 이 사람의 훌륭한 점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도무지 승리의 가망이 없는 독립전쟁에서 군복도 없는 자원군 출신 오합지졸을 맡아 별 예산도 없이 (당시 세금이 싫다고 반기를 든 미국인들에게 임시 의회가 세금을 걷기가 어려웠다) 당시 대영제국의 정예군 (지금의 미군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과 맞서 9년 동안 싸우며 버티었다는 점이다.  풍채 좋고 왕 같은 위엄이 있는 워싱턴이 흔들림 없이 (최소한 겉으로는) 중심을 잡고 있었기 때문에 헐벗고 춥고 굶주린 병사들이 그만 바라보고 흩어지지 않아 군대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신발이 없는 병사들도 많이 있어 행군을 하면 눈 위에 핏자국이 남던 시절이었다. 

2대 대통령 존 아담스는 워싱턴과는 반대 타입이다.  하바드에서 정규 교육을 받고 머리가 좋은 재사였지만 크지 않은 키 (170cm 정도) 에 대머리에 배가 나오고 성질이 급하고 감정적인 사람으로서 워싱턴 같은 위엄은 없었다. 워싱턴 행정부에서 초대 부통령을 지낸 후 토마스 제퍼슨을 간신히 몇표차로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재선땐 제퍼슨에게 패배한다.  제퍼슨과 평생 라이벌 관계였던 아담스는 후에 역사가들이 제퍼슨을 워싱턴과 함께 대표적인 건국 공신으로 추앙할 것을 예상했고 그에 대하여 질투를 느꼈다고 한다.  아담스는 제퍼슨과 거의 같은 때 사망했는데 죽을 때 한 말 중에 하나는 “아직 제퍼슨은 살아있지” 였다는 것이다.  아담스는 제퍼슨이 독립선언서의 저자로 불리는 것에도 불만이었다.  제퍼슨은 당시 독립선언을 한 식민지 의회에 모인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정리했을 뿐이지 자기 혼자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거의 비슷한 내용의 연설을 아담스 자신이 의회에서 먼저 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제퍼슨이 독립선언서 때문에 나중에 추앙받을지에 대해서 그 직전/후엔 잘 예측하지 못했다고 한다. 제퍼슨에게 독립선언서를 맡긴 사람 중 하나가 당시 의회 지도자 아담스였던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현대 미국인들은 제퍼슨을 워싱턴 다음가는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러시모어 산에는 워싱턴과 링컨 루즈벨트 (Theodore) 대통령과 함께 제퍼슨의 얼굴이 새겨져 있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엔 링컨 기념관과 제퍼슨 기념관이 로마 신전처럼 만들어져 있지만 아담스의 동상을 찾기는 힘들다.  제퍼슨에게 진 것이 분해서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 아담스는 그러나 자기 아들 (John Quincy Adams1767-1848) 이 미국의 6대 대통령이 되었다는 점에서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워싱턴과 제퍼슨이 남부 버지니아의 농장주 출신인데 반해 아담스는 북부의 보스턴 출신이다.  버지니아 농장주들은 사실 저택에서 노예를 부리며 귀족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비해 아담스는 별로 부유하지 않은 집안에서 청교도적 전통에서 검소하게 자란 사람이다.   미국이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는 생각은 사실 많이 과장된 것이다.  우선 미국 건국의 주도 세력은 남부 버지니아 지주출신들이었고 이 사람들은 청교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미국의 1대 3 대 4 대 5 대 대통령이 모두 버지니아 출신이었던 것이다.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내린 곳인 뉴 잉글랜드 (보스턴을 중심으로 미 북동부) 가 미국 최초의 유럽인 정착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미국의 최초 정착촌은 포카 한타스로 유명한 버지니아 주 제임스 타운이다.  아마 남북전쟁에서 버지니아가 남부군 편을 들었고 북부가 승리하면서 뉴 잉글랜드가 미국의 원조 타운으로 부각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미국의 건국자들 즉 “국부” 들은 종교에 별 관심이 없었고 대부분이 이신론자 deist 즉 신이 존재해도 인간사에는 개입을 하지 않는다고 믿던 사람들이었다.  건국 공신 중 가장 청교도 전통에 가까운 사람이 존 아담스인데 그도 청교도와 거리가 있는 사람이다.  아담스의 아버지는 아들이 목사가 되기를 원했는데 기독교에 회의적이던 아담스는 변호사가 되었던 것이다.  왜 미국이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는 생각이 퍼졌는지 잘 모르겠다.  최근에 미국 TV 케이블 방송인 HBO 에서 '존 아담스' 라는 제목으로 그의 전기와 미 건국 초기의 역사를 영상화한 미니 시리즈가 방송되었는데 미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겐 아주 유익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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